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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교실/역사

<한국역사 이해 1> 친일파가 김구를 죽인 이유

친일파가 김구를 죽인 이유

출처 : http://blog.hani.co.kr/scorpion/27119
<일본에 충성했던 조선인들은 미국을 위해서도 충성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저들을 미군정에 채용하는 것이다.> 라는 하지중장의 말 한마디가 죽을 위기를 맞아 떨고 있던 친일파들을 송두리째 구원해준다. 하지의 생각은 단순했다. 사상을 검증하기 힘든 애국투사들보다 일제 강점기시절부터 반공성향이 투철한 친일파들이 보다 더 미더워했던 것이다.

이런 미군정의 친일파 보호정책으로 악질친일파매국노들은 해방정국에서 사법부와 군부 그리고 경찰요직을 대부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준열사를 기리는 추모식에서까지 이들 친일파가 대거 단상을 점령하고 있었으므로 뜻있는 인사들은 이준열사가 눈을 감기 힘들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던 것이다.

친일파를 보호하고 자신의 휘하에 영입한 것은 미군정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유지지기반이 약했으며 공산주의를 극도로 불신하고 혐오하던 이승만도 친일파를 선호하고 신뢰하여 저들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경향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더욱 강화된다. 초대내각에서 이시영과 이범석을 빼면 거의가 친일매국인사들이 차지하게된 것이다.

국민들의 열화 같은 요청으로 친일매국노를 숙청할 반민특위가 국회에 설치된다. 그러나 이 반민특위조차도 친일파의 음모와 이승만의 승인 하에 파괴되고 반민특위에 앞장섰던 소장파 의원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친일경찰출신인 전봉덕과 노덕술 독수에 걸려든다. 헌병사령부로 끌려간 저들 국회의원들은 그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악형을 다 당한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한 친일파 일당이 김구를 제거한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이승만의 유일한 정적으로 독보적인 존재이던 김구를 제거함으로 자신들의 보호막인 이승만 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며 다른 이유는 자신들을 숙청할지모를 김구를 제거해야 자신들의 장래가 영구적으로 안전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가망 없는 북진통일을 앵무새처럼 외우던 이승만은 평화통일론자인 김구가 눈엣가시였다. 이승만은 민족통일보다 정권장악이 급선무였지만 김구는 정권장악보다는 민족통일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승만과 김구는 상충할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은 김구를 정적으로 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흉중을 눈치 챈 친일파들은 결국 안두희로 하여금 김구를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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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kukpa?Redirect=Log&logNo=120003032706

2001년 9월 4일자 기사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성무)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백범 김구 시해범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자 우익단체인 백의사 특공대원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했다”고 밝혔다. 미 제1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조지 실리 소령이 백범 암살 직후인 1949년 6월 29일 작성한 이 문서는 ‘김구-암살관련 배경정보’란 제목 아래 “나는 그를 정보원으로, 후에 한국 주재 CIC 요원으로 알고 있었다”며 “안두희는 백의사 혁명단 1소조 구성원으로 백의사 지도자인 염동진이 명령을 내리면 암살을 거행하겠다는 피의 맹세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리 소령은 1946년부터 1948년 12월까지 한국 주재 CIC파견대에서 근무한 한국통으로, 20개월간 염동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 CIC는 현재의 CIA

출처 : 독립운동가 조문기옹, 이대로 보낼건가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7.06.29 14:03

<중략>

백범을 국내 반민족세력과 결탁한 안두희가 미 CIA 정식 요원으로 '백범 제거 작전'에 투입되었음은 후일 공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서 자료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백범의 유언들은 적중하였다. 민족 분단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1948년 4월 김규식 박사와 함께 '남북연석회의' 장도에 오르면서도 백범은 유언을 했었다.

"외세와 결탁한 세력이 원하는 대로 하나인 이 조국을 두 동강나게 방치하면 필연적으로 부모형제가 총부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발발하게 된 것이다. 천추의 한이 될 이런 비극만은 막아야 한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이보다 우선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범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별개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고, 결사보국(決死報國)의 자세로 암살을 자원한 그가 소천한 지 딱 1년 후 동족상잔이 발발하였던 것. 하지만 백범의 유언은 비극적 현실화에서보다는 희망차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강산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중략>



김구가 제거된 뒤 이승만은 거침없는 독재정치를 구사한다. 친일파들도 자신들의 과거사를 꿰고 있는 애국지사와 항일투사와 독립운동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검거하고 살해하기 바빴다. 특히 김창룡과 김종원 일당은 호림부대를 앞세우고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과 같은 극우단체까지 가세시켜 양민학살에 광분하는데 남해안 여러 도서지방과 제주 4.3 항쟁 시절의 무수한 양심학살사건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해방 뒤에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법과 군부, 그리고 사회의 정점을 모조리 차지하며 호의호식하는 친일매국일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양심도 정의도 인권도 인륜도 송두리째 유린된 불법부당의 나라를 경험한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가 없었으므로 다카키 마사오와 같은 친일변절자가 쿠데타로 민주정권을 전복하여 독재의 아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staraig/AI3p/51?docid=1C2gK|AI3p|51|20081013203727&q=%B1%E8%B1%B8&srchid=CCB1C2gK|AI3p|51|20081013203727